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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歷史, history에 대해서

잡학지식

by cocolo23 2024. 6. 2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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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의의

 

 "역사"라는 것은 적어도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입니다. 변천하는 것 자체를 바꾸어 '역사'라고 정의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은 보존 되지 않고 사라져버립니다. 또 다른 '역사'의 의미는 이미 사라져가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바뀌고 변화를 대상화하여 기술 또는 기록된 결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 역사의 어원 

 영어의 "히스토리 (history)"는 고대 그리스어의  "히스토리아"에

서 유래 되었으며 "알다, 보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긴 시간을 거쳐 중세 영어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의미하다 15세기 말에 이르면 "과거 사건의 기록:으로 의미가 좁아집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한자어의 歷史로 사마천의 <사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전한무제시대때 태사령이였던 사마천이 기술한 <태사공서>가 나중에 <사기>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사'가 역사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 역사와 시간

 

 역사와 시간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완전한 동의의라면 별개의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역사의 시간에 대해 일본의 미키기요시는 역사적 시간을 자연적 시간이나 자연과학적 시간과 구별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시간의역사적 사건의 현재성, 일회성, 돌이킬 수 없는 역성이 있으며, 특히 역사의 '현재'는 물리학의 이론처럼 단순히 사차원의 한 점이 아니라 특권성을 갖는다고 하였습니다. 미키는 역사적 시간에는 방향성이 있고 '과거에서 미래'의 인과론적 시각이라는 방향과 '미래에서 과거'에 대한 목적론적 시각이라는 두가지 방향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역사와 기억

 프랑스의 사회학자 모리스 알백스는 기억은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각각의 집단에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알백스는 이러한 집합적 기억을 역사 기술과 대립으로, 역사가 관심을 갖는 것이 과거이지만 집합적 기억은 '현재 집단의 수요나 이익'에 따라 선택적이고 재구성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알백스는 집합적 기억은 집단의 동일성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허구가  섞여들어오기도 하지만, 역사는 역사가들이 꾸려가며 쌓아올린 과거 정보에서 중립적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중립적인 견해는 아라이다 아스만 등으로부터 "모든 역사 기술은 동시에 기억의 작업이기도 하며 의미부여, 당파성,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조건과 피하기 어렵다"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아라이다 아스만은 집합적 기억론을 응용하여 '기능적 기억'과 '축적적 기억'으로 나누어  재구성 하였습니다.

 

역사 기술 

 인류가 기록한 역사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문명, 지배자, 종교, 정치경제 등의 단면이 복합적으로 조합되어 오늘날의 역사기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료가 지금까지 내려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료를 다양하게 분석하여 가설, 검증을 거듭해 가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 목록으로서의 역사 기술 

 역사의 기술은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기술'에는 반드시 '문자'다 사용되지만, 가장 오래되고 자료도 풍부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쐐기문자의 점토판은 세금이나 전리품등 수입니 배급 또는 관리의 급여의 향정상의 재무를 기재한 단순한 목록이였습니다. 점차 인구나 지명등도 더해지고 고대 이집트의 문서에는 적대하는 부족이나 수장의 이름, 거주지명 등을 기술 하였습니다

이렇게 초기의 역사 기술은 어떤 목적에 특화되었고 다스리는 이들의 업적들이 '역사'라고 상정되지 않았지만, 축적된 결과로서 중요한 역사 기술이 되었습니다.

 

  • 역사의 시간감각 

 

 '무엇을', '어디까지' 목록에 기술을 하는 가는 문명마다 시간의 인식이 다르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도를 중심으로 한 힌두문명이나 사산완조등 아리아인들의 고문명은 역사 기술을 남기지 않고 있지만 중국은 방대한 역사 기술을 남겼으며 량치차오는 "중국은 역사학이 돌출적으로 발달하여 다른 나라에 예를 찾아볼 수 없다"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시간, 역사를 '순환적'이라고 보거나 직선적으로 보느냐가 하나의 요인인데 순환적으로 보는 인도는 윤회나 카르마의 개념이 더해져 인간의 시간이나 사건은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여겨 기술하는 의미를 찾지 못한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 왕명표

 

 문명의 발전에 따라 사회에도 여러 사건들을 기록하였는데 초기에는 사건 이름으로 나이를 나타내었고 고대 이집트나 우르 제3왕조의 메소포타미아 이후에는 일반적인 역사 기술방법으로 전개 되었습니다. 그 예로 함무라비 43년의 치세에는 모든 해에 명칭이 따랐으며, 37년째에는 "바빌로니아의 국가신인 마르둑의 위광을 얻어 트룩, 카쿰, 스파르투의 나라를 타도하였다" 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해마다 일어난 일을 적은 상아나 나무 패를 만들었고 파라오가 바뀌면 파피루스로 옮겨 기록하였습니다.  이런 역사 기술은 아메리카의 토착민족에서도 발견되었으며 아메리카의 인디언 부족중의 하나인 라코타족도 일년마다 사건을 이모지로 물소 가죽에 윈터 카운트를 남겼습니다.

역사 기술은 왕명과 재위 연도를 기록하고 전왕과의 계보가 첨부되어 만들어지는 '왕명표'에따라 기록되어 연속적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카시트 시대부터 이집트에서도 왕명표석비 '팔레르모 스톤' 이 만들어진 제 5오아국 시대부터 이 왕명표를 기준으로 역사 기술이 시작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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